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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길을 앞에 서서 가시는 예수” (마가 10: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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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순재 작성일2021-09-04 조회수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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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처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복음 전도활동을 시작하신 곳은 갈릴리 호수 근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더욱 미워하고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새롭게 하고, 진리를 선포하시며 백성들의 아픔과 간절한 필요를 채워주시고 있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기득권, 자기 권리에 초점을 맞추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 다가오는 치명적인 위험 예루살렘의 함정!>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치명적인 위험,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인류 구원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결심을 합니다만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해코지하든지, 죽이려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3-34)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이 땅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무모한 도전? 가치 있는 도전! Dawn Wall, Yosemite National Park, CA>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해발 2,300미터 높이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 바위는 한 덩어리로 밑에서부터 높이가 910미터인 암벽 엘 캐피탄이 있습니다. 이 바위에 새벽에 해가 뜨면 햇빛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라 하여 ‘Dawn Wall, 여명의 절벽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손톱조차 들어가지 않는 매끈하고 아찔한 벽면으로 악명이 높아 누구도 암벽 클라이밍을 시도한 적 없는 이곳에 두 남자가 최초로 등정을 시도합니다. 암벽 등반의 살아있는 전설인 토미 칼드웰과 파트너 케빈 조거슨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던월 등반 프로젝트에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6년 동안 올라갈 루트를 연구하고, 조금씩 준비한 후, 최종적으로 20151월에 19일 동안 벽에 매달린 채, 먹고 자며 계속된 이들의 도전에 전 세계 미디어가 중계하였습니다. 이때 촬영한 영상을 모아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가 던 웰, Dawn Wall”입니다. 정말 대단한 영화입니다. 등반을 계획한 토미는 암벽 타기에 가장 중요한 둘 째 손가락 하나를 사고로 잃어서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끝내 꼭대기에 오르는데 성공합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위험한 일을, 왜 하는가?” 생각합니다. 영화로 만들어 지고, 전 세계에 알려집니다만 실제로 무모한 도전이란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왜 던 월을 오르는 걸까요? 이 다큐를 본 사람들이나, 방송에 나온 소감들을 살펴보면, 그의 무모한 도전을 바라보며 내 삶에 가치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불가능을 이겨내는 것을 보며, “내 삶에 지금 이겨내지 못할 어려움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저렇게 높은 벽을 오르는 게 가능하구나. 그러면 내 앞에 놓인 문제는 어쩌면 손쉽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도전들을 보곤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이 할 수 없을 거라 믿는 도전을 해내고, 우리에게 한계는 없다고 힘내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도 아름다운데,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구원하는 일에 자신의 온 몸을, 그것도 확실히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주님의 가장 고귀한 생명을 바치기 위해,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마가10:32) 그냥 마지못해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의 갈채를 받고 가는 것이 아닌데도, 예수님은 그들 앞에 서서 가십니다.” 따라가는 제자들은 모두 놀랍니다.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을 여러 영어성경 번역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깜짝 놀랐다. Amazed, (RSV)”, “경악했다. Astonished, (NIV)”,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Filled with awe, (NEB)”, “경탄했다. Their mood was one of wonderment (NAB)”, 그리고 망연자실하게 되었다. they were in a daze. (JB)” 제자들이 왜 놀랐습니까? 지금 주님이 가시는 길은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앞장서서 가십니다. 왜 제자들이 두려워합니까? 그 이유는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잡혀 죽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면 이제 끝장이고, 아무 의미도 없는데다, 우리마저 죽을지도 몰라.” 걱정하기에 두려워 벌벌 떨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앞에 서서 가시는 예수님께 배우는 3가지 교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  사건 속에 우리가 따라야 할 교훈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주님이 앞서가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은 끝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주님은 고난과 죽음이 있으나,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승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승리이전에 있을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 무섭고, 당장 눈앞에 벌어질 일에 초점을 둡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끝이 아님을 알고 계셨고,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건지시고,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신앙의 비밀은, 믿음의 본질은 이 땅에서의 영화, 안락, 편리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 궁극적인 승리, 부활에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앞서 가시는 그 길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께서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은 그 어떤 형벌보다 고통스런 치욕의 아픔이지만,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고, 세상 권세를 잡은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영원히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기독교의 본질이 섬김이며, 예수의 죽음에 의한 대속의 구원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요, 주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이 예수를 믿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다.”는 표현은 큰 수(폴론 πολλών)”를 의미하지만, ‘모두(판톤, πάντων)’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섬기는 일은 모든 사람의 섬기는 자 곧 절대적인 섬김, 낮아짐, 겸손을 의미합니다. 또 구원은 모두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1:12) 주어지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처럼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오해하고, 둔하고, 자기 욕망에 가득 차 있었지만 그래도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가 엉뚱한 요구를 했지만, 책망하지 않으시고 잘 모르고 있다고 하시면서도 오히려 격려하십니다. 38-39입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앞으로 너희도 고난의 잔을 마시고, 고난의 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제자들에게 할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42-44절입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우리도 따라가야 할 주님 가신 길>

세속의 가치는 권세를 추구하고, 명예를 따라가며, 사람들을 부리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여깁니다. 2,000년 전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이나 가치 체계는 여전히 비슷합니다만, 예수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어 너희 중에 라는 말씀에 우리가 해당되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섬기러 오신 예수님, 자기희생을 하신 예수님을 본 받고, 진정으로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본받을 대상이 너무나 무너져 있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는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휩쓴 가장 중요한 일상용어가 되었습니다. 교회도 세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단어 자체가 세상에서 불러내었다.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의 가슴을 후비는 준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길,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앞장 서 가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주님을 뒤따르시겠습니까? 아니면 제자들처럼 놀라고, 두려워 떠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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