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구덩이에서 다시 시작한 요셉_감사하며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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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순재 작성일2021-12-02 조회수6,656본문
Philip Watkins 박사는 “감사란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과 이것이 외부 대상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좋은 일을 외부 대상에게서 받은 선물로 인식하여, 이를 인정하고 표현합니다. 자신이 준 것보다 받은 것을 더 많이 생각하니 감사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사고 습관이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방 땅에서 총리가 된 요셉의 이야기를 익히 들었습니다. 꿈을 많이 꾼 소년 요셉, 그래서 우리도 큰 꿈과 원대한 계획을 세워야한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입니다! 나의 계획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나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지금 내가 모르기에 오늘 내게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고, 애급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애급에 가게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또 만일 그가 총리가 되어야한다는 목표와 야망을 가졌더라면, 그는 노예 생활과 감옥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렸거나, 탈옥을 계획하다가 붙잡혀 죽었을지 모릅니다. 요셉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다만 오늘 그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히, 최선을 다하며 감사했고, 순종했습니다.
첫 번째 노예로 팔려간 곳이 경호 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애급에 팔려갔을 때 애급 말을 알았겠습니까? 업무 파악을 제대로 했겠습니까? 말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노예 주제에 인간다운 대접은커녕 수도 없이 매를 맞고, 혼나고, 고생했겠지요. 그러나 요셉은 시킨 일만 하지 않고 더 충실하게 일합니다. 그런 요셉의 성품이 창세기 37장에 나옵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아버지가 세겜에 가서 양을 치는 형들에게 가보고 오라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세겜에 갔더니 형들이 안보입니다. 어디로 갔나? 어떻게 찾나? 걱정하는데 어떤 사람이 도단으로 간 것 같다는 겁니다. 도단은 세겜에서 북쪽으로 20Km 거리, 80리길입니다. 우리 같으면, 17살 청소년 아이가 20Km 떨어진 도단까지 찾아갈 수 있을까요? “아버지 세겜에 갔더니 형들이 없었어요. 도단까지 갔다는 말이 있긴 한데, 그 먼데까지 갈 형편도 아니고, 가도 있다는 보장도 없고 해서 돌아왔어요.” 이 대답이 자연스럽지 아닐까요? 요셉은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찾아내고 만납니다. 요셉의 성품과 책임감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니 요셉이 점점 그 집안의 중심인물로 자리를 잡습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이 열심히, 최선을 다 해 일해서 보디발의 집안이 엄청난 복을 밭농사와 모든 소유에 받게 되었는데, 요셉은 보상은커녕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요셉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억울함, 분노, 좌절감에 우울증에 빠질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감옥에 간 것이 억울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노예가 주인마님을 넘보았다면 당장 죽임을 당합니다. 남편 보디발도 요셉의 결백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인을 혼내는 것이 편할까요? 노예 요셉을 처리하는 것이 편할까요? 요셉을 아끼는 나머지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감옥에 보내는 것입니다. 만약 집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마나님이 시킨 자객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거든요. 요셉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를 신임하는 보호하려는 주인님 보디발의 배려구나! 이제 살았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 갇혔어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 이런 자세를 요셉이 언제 배웠고, 언제 깨달은 것입니까? 그것은 요셉이 17살 때, 도단 구덩이 속에서 배운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채색 옷을 벗기고 요셉을 물 없는 웅덩이에 던졌습니다. 인생에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젠 끝났구나. 죽었구나. 절망의 상황에서 요셉은 극한체험을 합니다.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고생이라곤 해본 적 없었던 요셉이 가장 가까운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절망, 죽음, 공포, 극한의 위기를 만났다가 구덩이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갑자기 유다가 동생을 죽이지 말고 팔아넘기자고 제안을 하여 목숨을 구합니다. 미디안상인에게 팔렸을 때 요셉은 다시 살아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비록 가족들과 헤어졌지만, 살아있는 것, 생명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노예 생활도 적극적으로 일했고, 드디어 보디발의 눈에 들어 그 집 총무가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0-23) 그가 노예로 살면서도 경호대장 집에서는 재무와 총무 훈련을, 국사범을 수용하는 감옥에서는 정치와 인사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애급의 사회 경제적 위기가 닥쳤을 때에,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군이 된 것입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 하나님이 나를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7-8)
요셉이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어렸을 때 형들은 대부분 들판에서 양을 치며 자랐지만, 라헬의 아들 요셉은 야곱이 집에 데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집에서 요셉을 데리고 무슨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가 지냈던 과거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이야기들, 형을 속이고 집에서 쫓겨난 이야기, 벧엘 들판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 라반 삼촌 집에서 고생했지만 거기서 엄마 라헬을 만난 이야기,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집안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는 가정”이니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아야한다는 것,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변치 않고 가져야한다는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을 다시 만났을 땐, 야곱과 에서가 얍복강가에서 화해하는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고, 아버지 야곱이 죽었을 때는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고 아버지를 가나안 땅에 장례를 지냈고, 자신도 죽을 때에는 애굽의 총리로서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자신의 유해를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400년이 지난 다음, 그의 소원은 이뤄져 모세 시대 출애굽할 때 요셉의 유해를 메고 홍해 바다를 건너게 됩니다.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출13: 19) 지금도 이스라엘엔 “요셉의 무덤”이라는 지명과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요셉은 17살 때 도단에서 겪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요셉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약의 백성, 약속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지나도록 하십니다. 여러분은 지난날들 속에서 어떤 위기를 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까?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를 기억하면 요셉처럼 어떤 역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쁨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요셉처럼 우리 인생의 위기 속에 건져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십자가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생 감사하는 인생, 은혜로운 삶의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2021년, 코로나로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보호하셨습니다. 지켜주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가 구원의 감격을 평생 간직하며 요셉처럼 감사하는 인생으로 구원의 섭리를 이뤄가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