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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누리는 주안의 기쁨과 평강(Joy & Peace in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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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순재 작성일2020-05-13 조회수7,077본문
전세계가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하여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각 나라 정부에서 강력한 방역조치를 하다 보니 기본적인 생활을 통제하여 세계 경제가 크게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었고, 이젠 단순히 감염 확산, 건강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대공황(Great Deflation)과 대량실업사태, 불안과 공포가 엄습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인 “미라클 모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 할 엘로드(Hal Elrod)가 스무 살에 큰 교통사고를 겪습니다. 열 한군데 골절상과 뇌손상을 입어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습니다. 사고소식을 듣고 수많은 친척들, 친구들이 격려 전화를 주고, 관심을 쏟아 주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나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회사 내 매출 1위를 달성하고, 베스트셀러를 출간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자기회사를 설립했더니 잘 풀려, 수백만 불의 매출을 달성했는데, 갑자기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오는 바람에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2008년 일입니다. 그는 빚더미에 파묻혔고, 회사는 망하고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나중에 엘 할로드에게 “교통사고와 경제적 어려움 중 어느 것이 더 힘 들었느냐?” 물었더니, 그는 경제적 죽음이 더 힘 들었다고 대답합니다. 회사가 망하고 나니 이번엔 자기를 딱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찾아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철저히 혼자만 남습니다. 삶의 모든 면이 차례로 무너졌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게 너무도 두렵고 불확실했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사람들이 걱정해주고, 도와주는데 사업에 실패하면 사람들이 멀리합니다. 고립되는 거지요. 그래서 경제적 위기가 더 쓰라립니다. 지금 코로나19위기는 이제 단순히 건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행 자유가 제한되고, 경제 전망,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습니다. “불안과 염려, 공포와 불안한 시대에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립보서 4장 4절)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기뻐하라!” 단어의 헬라어 원어 “카라 καρά”와 동사 기뻐하다, 기뻐하라는 카이로(καίρω)는 신약성경에서 134회 사용되고, 빌립보서에만 14번 기록했습니다. 본래 신앙생활의 본질은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려움 속에서 기뻐하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며 누리는 기쁨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했지만 억지로 기뻐할 수는 없지 않나요? 기쁜 일이 생겨야 기뻐하지요. 여러분, 기쁨을 깨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안에 기쁨을 깨뜨리는 것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불화에서 시작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 불화가 생기면 참 힘듭니다. 그래서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부관계, 그 다음은 자녀관계, 형제 관계, 그 다음은 직장 동료, 교인들과 관계입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 내부 갈등과 큰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아마 교회 내 크게 영향력을 끼치던 여자분 같습니다. 바울은 실명을 거론해서 화해를 권면합니다. 갈등이 컸고, 그 일로 모두들 맘이 상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쁨을 빼앗아 가는 불편한 인간관계를 해결하라고, 그 해결방법을 가르쳐줍니다. 5절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을 베푸는 것이 갈등해결 방법이라는 겁니다. 관용(έπιεικές)이란 “넓은 마음으로 남을 품는 것, 남의 잘못에 대해 너그럽고 그들의 결점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인자한 태도”입니다. 경청하는 것 - 조금 피곤하긴 해도 상대방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용납하는 것 — 실수에 대해, 허물과 잘못을 한번 참고, 품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없지.”하고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만약 “어찌 그럴 수 있어?” 하면 화가 솟구치고요, “그럴 수도 있지, 할 수 없지 뭐” 하면 조용히 지나갑니다.
관용을 베푸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대로 관용을 훈련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현대 사회를 분노 조절을 상실한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난 몇 년 사이에 화를 참지 못하고, 맘에 안 든다고 보복운전하고, 이런 사람들이 무척 늘어났습니다. 서로를 용납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가족같이 행복한 관계가 됩니다. “참고 받아주라, 관용을 베풀라.”고 하니까 “크리스천은 손해만 보고 살아야하나요?”라고 질문하는 분이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고, 상대방 과실이 분명한데 나만 참아야하면 억울하지 않느냐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아름답고 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빌4장 6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섭리로 이끄시는 하나님께 다 아뢸 수 있는, 절대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 아뢰기만 하면 다 듣고 응답해주신다고 확답을 주셨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되돌려주겠다고요.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요!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라는 말은 헬라원어로 판타 눈(πάντα νούν)인데 “알아서 깨닫고 이해하는 기능, 냉정하고 침착하여 편견 없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훨씬 뛰어 넘어 더 좋은 것, 더 아름다운 것을 베풀어주실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평강을 주십니다! 이사야55장 9절에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우들에게 이렇게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로마에 도착하기 직전 죽음에서 살아나는 생생한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장 13-25절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중략> ...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묶여서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지중해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배가 표류했습니다. 14일이 넘도록 먹을 것을 못 먹고 배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사람들이 이젠 다 죽었구나! 생각하는 시간에 바울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 평강! 구원의 확신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을 배에 탄 276명의 사람들 – 그를 체포한 군인들, 승객, 심지어 선장에게까지 하나님의 평강을 전합니다. 표류하던 배는 바울의 말대로 멜리데 섬(지금의 몰타)에 도착하여 다 살아납니다! 유라굴로 광풍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던 절대 평강과 구원을 경험했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갈등과 상처투성이 현실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풍랑은 지나가고, 위기는 끝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감사함으로 아뢸 때 하나님의 평강(είρήνη τού θεού)이 함께 하시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성도들과 교회를 지켜 주신다고요.
저는 코로나19 위기라는 세계적인 경제 광풍 앞에서 여러분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감사함으로 아뢰면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JIU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기는 비결은 성경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 말씀을 따라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를 믿고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엡3:12)갑시다! 그러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이사야 26:3)”
하나님의 평강, 세상이 알 수 없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인간의 지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강! 믿는 사람의 기쁨과 평강의 근원은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체험하면서 8절 말씀을 순종합시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착실히 실행해야합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보시면 ①참된 일 ②경건한 일 ③옳은 일 ④ 정결한 일 ⑤사랑 받을 만한 일 ⑥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
시작할 때 소개했던 “미라클 모닝”의 저자 할 엘로드는 파산선고와 고립, 극심한 우울증 가운데 절대자 하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고독과 경제 위기 속에서 재산을 다 잃었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 천국 소망을 가지니 참된 기쁨을 맛보고, 진정한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Be at peace with where you are and take steps every day to get where you want to go”(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평강을 유지하고, 당신이 가고자 하는 지점에 도달하도록 매일 한 발자국씩 나아가라!) 우리도 묵묵히 성경 말씀을 실천합시다.
내가 지금 집에서, 우리 교회에서, 직장에서 ①참된 것 ②경건한 일 ③옳은 일 ④ 정결한 일 ⑤사랑 받을 만한 일 ⑥칭찬 받을 만한 일들을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작게라도 실행합시다. 평강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베스트셀러인 “미라클 모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 할 엘로드(Hal Elrod)가 스무 살에 큰 교통사고를 겪습니다. 열 한군데 골절상과 뇌손상을 입어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습니다. 사고소식을 듣고 수많은 친척들, 친구들이 격려 전화를 주고, 관심을 쏟아 주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나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회사 내 매출 1위를 달성하고, 베스트셀러를 출간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자기회사를 설립했더니 잘 풀려, 수백만 불의 매출을 달성했는데, 갑자기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오는 바람에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2008년 일입니다. 그는 빚더미에 파묻혔고, 회사는 망하고 심각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나중에 엘 할로드에게 “교통사고와 경제적 어려움 중 어느 것이 더 힘 들었느냐?” 물었더니, 그는 경제적 죽음이 더 힘 들었다고 대답합니다. 회사가 망하고 나니 이번엔 자기를 딱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찾아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철저히 혼자만 남습니다. 삶의 모든 면이 차례로 무너졌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든 게 너무도 두렵고 불확실했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사람들이 걱정해주고, 도와주는데 사업에 실패하면 사람들이 멀리합니다. 고립되는 거지요. 그래서 경제적 위기가 더 쓰라립니다. 지금 코로나19위기는 이제 단순히 건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행 자유가 제한되고, 경제 전망,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습니다. “불안과 염려, 공포와 불안한 시대에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립보서 4장 4절)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기뻐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기뻐하라!” 단어의 헬라어 원어 “카라 καρά”와 동사 기뻐하다, 기뻐하라는 카이로(καίρω)는 신약성경에서 134회 사용되고, 빌립보서에만 14번 기록했습니다. 본래 신앙생활의 본질은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어려움 속에서 기뻐하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며 누리는 기쁨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했지만 억지로 기뻐할 수는 없지 않나요? 기쁜 일이 생겨야 기뻐하지요. 여러분, 기쁨을 깨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안에 기쁨을 깨뜨리는 것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불화에서 시작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 불화가 생기면 참 힘듭니다. 그래서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부관계, 그 다음은 자녀관계, 형제 관계, 그 다음은 직장 동료, 교인들과 관계입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4:2) 내부 갈등과 큰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아마 교회 내 크게 영향력을 끼치던 여자분 같습니다. 바울은 실명을 거론해서 화해를 권면합니다. 갈등이 컸고, 그 일로 모두들 맘이 상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쁨을 빼앗아 가는 불편한 인간관계를 해결하라고, 그 해결방법을 가르쳐줍니다. 5절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을 베푸는 것이 갈등해결 방법이라는 겁니다. 관용(έπιεικές)이란 “넓은 마음으로 남을 품는 것, 남의 잘못에 대해 너그럽고 그들의 결점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인자한 태도”입니다. 경청하는 것 - 조금 피곤하긴 해도 상대방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용납하는 것 — 실수에 대해, 허물과 잘못을 한번 참고, 품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없지.”하고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만약 “어찌 그럴 수 있어?” 하면 화가 솟구치고요, “그럴 수도 있지, 할 수 없지 뭐” 하면 조용히 지나갑니다.
관용을 베푸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대로 관용을 훈련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죽하면 현대 사회를 분노 조절을 상실한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난 몇 년 사이에 화를 참지 못하고, 맘에 안 든다고 보복운전하고, 이런 사람들이 무척 늘어났습니다. 서로를 용납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가족같이 행복한 관계가 됩니다. “참고 받아주라, 관용을 베풀라.”고 하니까 “크리스천은 손해만 보고 살아야하나요?”라고 질문하는 분이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고, 상대방 과실이 분명한데 나만 참아야하면 억울하지 않느냐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아름답고 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빌4장 6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섭리로 이끄시는 하나님께 다 아뢸 수 있는, 절대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 아뢰기만 하면 다 듣고 응답해주신다고 확답을 주셨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되돌려주겠다고요.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요!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라는 말은 헬라원어로 판타 눈(πάντα νούν)인데 “알아서 깨닫고 이해하는 기능, 냉정하고 침착하여 편견 없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훨씬 뛰어 넘어 더 좋은 것, 더 아름다운 것을 베풀어주실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평강을 주십니다! 이사야55장 9절에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우들에게 이렇게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로마에 도착하기 직전 죽음에서 살아나는 생생한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장 13-25절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중략> ...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묶여서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지중해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배가 표류했습니다. 14일이 넘도록 먹을 것을 못 먹고 배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사람들이 이젠 다 죽었구나! 생각하는 시간에 바울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절대 평강! 구원의 확신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을 배에 탄 276명의 사람들 – 그를 체포한 군인들, 승객, 심지어 선장에게까지 하나님의 평강을 전합니다. 표류하던 배는 바울의 말대로 멜리데 섬(지금의 몰타)에 도착하여 다 살아납니다! 유라굴로 광풍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던 절대 평강과 구원을 경험했기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갈등과 상처투성이 현실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담대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풍랑은 지나가고, 위기는 끝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감사함으로 아뢸 때 하나님의 평강(είρήνη τού θεού)이 함께 하시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성도들과 교회를 지켜 주신다고요.
저는 코로나19 위기라는 세계적인 경제 광풍 앞에서 여러분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감사함으로 아뢰면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JIU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기는 비결은 성경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 말씀을 따라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를 믿고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엡3:12)갑시다! 그러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이사야 26:3)”
하나님의 평강, 세상이 알 수 없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인간의 지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강! 믿는 사람의 기쁨과 평강의 근원은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며 체험하면서 8절 말씀을 순종합시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착실히 실행해야합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보시면 ①참된 일 ②경건한 일 ③옳은 일 ④ 정결한 일 ⑤사랑 받을 만한 일 ⑥칭찬 받을 만한 일입니다.
시작할 때 소개했던 “미라클 모닝”의 저자 할 엘로드는 파산선고와 고립, 극심한 우울증 가운데 절대자 하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고독과 경제 위기 속에서 재산을 다 잃었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 천국 소망을 가지니 참된 기쁨을 맛보고, 진정한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Be at peace with where you are and take steps every day to get where you want to go”(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평강을 유지하고, 당신이 가고자 하는 지점에 도달하도록 매일 한 발자국씩 나아가라!) 우리도 묵묵히 성경 말씀을 실천합시다.
내가 지금 집에서, 우리 교회에서, 직장에서 ①참된 것 ②경건한 일 ③옳은 일 ④ 정결한 일 ⑤사랑 받을 만한 일 ⑥칭찬 받을 만한 일들을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작게라도 실행합시다. 평강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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